Root's Of Hard Rock / Black Sabbath - 1회 ○ Hard Rock/Heavy Metal

Root's Of Hard Rock / Heavy Metal - 1회

                     

한 여름밤의 암흑은 이들의 것

BLACK SABBATH

 

 

아직까지도 모든 시작되어 오고 있는 음악들은 영국과 미국의 환영(歡迎)을 동반해야 한다. 이는 락(ROCK)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인 탄생과 발달되어 온 과정만을 대략적으로 살펴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영국과 미국 락의 분명한 차이점은 간략히 락의 종주국인 영국의 그것을 유입하여 진보화시킨 것이 미국의 하드락(Hard Rock)과 헤비메탈(Heavy Metal)이라는 점이다.


영국 헤비메탈의 역사는 66년과 67 10월에 각각 생겨났던 야드버즈(YARDBIRDS)와 크림(CREAM)이라는 전설적 구심에서 그 근본적인 출발점을 따져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 헤비 락의 역사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를 거점으로 60년대 중후반의 헤이트 애쉬베리(Hate Ashbury)를 근간으로 한 사이키델릭(Psychedelick)과 포크 락(Folk Rock)의 반사회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영국 락음악은 락의 탄생을 음악사적 진원으로 블루스(Blues)라는 틀을 기반으로 해서 보다 다분화시켜 생성. 발달되어 왔다는 엄밀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모든 락 음악의 시점은 영국을 기점으로 발달되어 온 것이 보다 정확한 해답일 것이다. 정작 헤비메탈이라는 어휘를 처음으로 부여 받은 밴드가 미국의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OYSTER CULT)라는 밴드일지언정, 그 본연의 심지는 영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온 것 또한 사실이다.


63
년 에릭 버든(Eric Burden)으로 대표되는 에니멀스(ANIMALS)와 아직까지도 건재를 과시하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그리고 더 후(THE WHO). 66년 역사적인 3인조 그룹인 크림(CREAM)의 탄생, 68년 야드버즈(YARDBIRDS)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LIN)으로, 같은 해 2월 딥 퍼플(DEEP PURPLE)의 등장, 70년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유라이어 힙(URIAH HEEP)...
이처럼 활발한 진행을 보여온 브리티쉬 헤비메탈(British Heavy Metal)의 과거는 향후, 전세계적인 락의 기린아들을 이미 1970년도 이전에 배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50년대 락앤 롤(Rock N' Roll)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완벽한 결합을 일궈낸 하드 락, 60년대 숱한 그룹들의 신성한 제도권으로의 돌입은 70년대에 이르러 적잖은 문제를 파생시키게 되었고, 이 문제점에 대한 해결의 열쇠는 당시에 생성되어 지금에까지 걸어오고 있는 거물급 뮤지션들에 의해 주창되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즘에서 묘연하게도 현대 락사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70년도에 데뷔한 블랙 사바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리고 이들의 소개를 시작으로 하드락과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명그룹들을 연재하려 한다. 이제 하나하나 대어들을 낚아 나가보자.

/Minimim

Under Wheels Of Confusion

먼저 블랙사바스(BLACK SABBATH)의 공식적인 데뷔작이 발표된 1970년도의 전세계적인 락의 흐름을 살펴보자. 70년에는 EL&P 가입 이전의 칼 팔머(Carl Palmer)라는 진보적인 드러머가 결성한 아토믹 루스터(ATOMIC ROOSTER)의 데뷔 앨범이 발표되었고, 그룹 프리(FREE)의 대표작인「Highway, 제퍼슨 에어플랜(JEFFERSON AIRPLANE)의 환영인 핫 튜나(HOT TUNA)의 데뷔 앨범과 랜디 바크만(Randy Bachman)이 이끈 게스 후(GUESS WHO)의 대표작인「American Woman」등의 앨범이 발표되었던 해이다.
주변 상황은 다분히 공격적인 시점이었고, 블랙 사바스는 나름대로의 진취적인 흐름으로 자신들의 데뷔작을 유려하게 공표했다. 이들은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도 그룹 나름대로의 확고한 ‘스피리트’(Spirit)를 잊지 않고, 모든 음악적 전개를 시대에 맞게 폭발시킬 줄 아는 여유로운 흐름을 보여 나왔다. 그룹을 거쳐간 맴버 또한 헤비 메탈의 또다른 거대한 줄기를 형성해 냈다 할 수 있다.   


67
년에 어스(EARTH)라는 그룹명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이들 그룹에 대한 대략적인 발자취를 살펴보자.
67
년에 폴카 털크(Polka Tulk)라는 밴드명으로 버밍엄의 아스톤 지역에서 4명의 젊은이들이 블루스 성향의 음악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전율적인 보이스와 카리스마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라는 인물과 리듬의 완벽한 진행감과 뛰어난 박자감을 가진 기저 버틀러(Terry 'Geezer' Butler). 이렇게 두 사람은 드러머를 구하던 중에 우연히 영국 아트메탈의 기린아로 통하는 제스로 툴(JETHRO TULL) 출신이자, 당시 기타계에서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했던 출중한 연주와 변칙적인 기타음을 내는 앤소니 아이오미(Anthony Iommi-토니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는 안전사고로 절단되어 있는데, 사고 후에도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삭이지 못하고, 골무를 착용하여 아직까지도 초인적인 연주를 펼치고 있다)와 미살러지(MYTHOLOGY)라는 그룹에서 활동하던 드러머 빌 워드(Bill Ward)를 발견하면서 어스(EARTH)라는 그룹명으로 개명을 하게 된다.

이로써 사바스의 태동적 근간이 마련되었고, 이들의 첫 번째 기회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즈 트럼펫 주자이자 현재, 빅 베어 레코드(Big Bear Record)회사의 사장인 짐 심슨(Jim Simson)이라는 인물이 ‘어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며, 어렵잖게 레코드사의 이목을 끌게 된다. 밴드명을 ‘악마들의 축제날’이라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로 바꾸는 와중에 브리티쉬 락에 있어 불세출의 프로듀서로 통하는 로저 베인(Roger Bain)이라는 인물과의 만남으로 이들은 70년도에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에 이른다.(로저는 이들의 3집앨범까지의 제작을 맡았었고 이후, 또다른 브리티쉬 헤비메탈의 거장인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를 발굴하여 데뷔시키기도 하였다.)

여타 그룹들의 음악이 세분화되어 각각으로 나뉘어지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이들의 음악은 한결같다면 한결같고, 해마다 나오는 음악의 변형이 언제나 반가웠던 드문 그룹이기도 하다. 솔직히 이들의 음악은 오지 오스본이 함께했던 78년까지의 약 10여 년의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 할 수 있다. 물론, 오지 이후에 반복되다시피 한 여러 뮤지션들의 가입과 탈퇴 그리고, 로니 제임스 디오 등 또 다른 대형 아티스트의 투입이 얼마간의 성과를 보여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다. 그러나 골수 블랙 사바스의 신봉자들은 오지 오스본의 카리스마를 두고두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묵과하기 힘든 점이다. 1997 5월에 행해진 오즈 페스티벌(Ozz Festival)에서 많은 팬들이 간절히 기다렸던 순서는 당연히 토니 아이오미와 오지의 만남이었다. 물론 십 수년 전까지도 블랙 사바스의 원년 맴버들의 재결성이 커다란 기대와 관심을 끈 적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지난 시대에 온갖 전투를 함께 하며, 헤비 메탈이라는 괴물의 본체를 완성해 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각자의 시스템을 가진 채로 이제는 헤비메탈이라는 몸체 곳곳을 조정해 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이 이들의 데뷔 당시의 상황이다.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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