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Yardbirds와 Jimmy Page의 상관 관계 ○ Artist & Album Review

지미 페이지(JIMMY PAGE)

 

1961년 지미 페이지는 고교 졸업 후, 닐 크리스챤 앤 더 크루세이더스(NEIL CHRISTIAN & THE CRUSADER'S)라는 그룹에 최초로 가입을 하며 음악계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리듬 앤 블루스 계열의 음악을 시작으로 공식적인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지미 페이지의 장이 시작된 거죠. 이후 영국의 권위 있는 그룹 시릴 데이비스 올 스타스(CYRIL DAVIS ALL STARS)에 가입하며, 자신만의 기타 주법을 개발하게 됩니다. 디스토션과 피드백을 주로 한 테크닉을 섭렵한 그는 C.L.타루미(C.L. Tarumi)라는 걸출한 프로듀서의 도움으로 레코드 디렉터 겸 프로듀서로서 일을 병행하게 됩니다. 당시 함께 일한 사람 중에는 에릭 클랩튼도 끼어 있었죠. 이 때까지가 1965년의 일들로 그의 연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왕성한 음의 탐구 시기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1966년 지미는 당시 영국의 명 그룹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야드버즈에 ‘베이시스트를 구할 때까지’라는 일시적인 계약 하에 베이스 파트로 가입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의 실력이 점차 인정받게 되어 제프 벡과의 트윈 시스템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미 지미의 기타는 영국 내에서 정평이 나있는 상태였고, 지미의 야드버즈로의 가입은 제프 벡에게 다소 끌려가는 듯 하던 야드버즈의 음악적 호흡에 또 다른 발전과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야드버즈 활동과 번외로1960년대 후반 발표되는 앨범들 중, 그의 기타가 세션 되지 않은 앨범이 없을 정도로 그의 기타는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 백 여 장의 앨범 참여(보다 확실한 기록에 의하면, 63년부터 65년까지 영국 내에서 발표된 앨범의 75% 이상이 지미 페이지가 참여한 앨범이었다 함)라는 수치상의 기록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죠.

이미 학창 시절부터 친분이 있던 지미 페이지와 제프의 만남이 일궈낸 선의의 경쟁은 야드버즈는 물론 기타 사를 주도하게 되는 두 명인의 연주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기로 일컬어 집니다.


얼마간의 영. 미 순회공연 중에도 지미와 제프가 리드하는 야드버즈의 연주력은 더욱 더 높이 인정받게 되었고, 그룹의 성장은 거듭되죠. 이 즈음 그룹은 미국으로의 공식적인 데뷔를 시도하게 됩니다. 이에 제프 벡은 그룹을 탈퇴하며, 영국에 남기를 희망합니다. 제프의 탈퇴로 다소 의기소침한 야드버즈는 1967년 최후의 스튜디오 작품인 「Little Games」를 발표하게 되죠. 이 앨범에는 <Goodnight Sweet Josephin> <Ten Little Indians>등의 곡이 소폭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The Road To Utopia>에서는 첼로의 선율을 과감하게 도입하며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창작력을 과시합니다. 이 앨범은 당시에 성행하기 시작하는 사이키델릭적 성향이 엿보이는 앨범으로 평가 받는데, 이는 약간은 잘못된 평가라 할 수 있습니다
. 이들 사운드에 가장 중요한 맥으로 통하는 기타 파트에 있어 야드버즈가 분출해 낸 에너지만 보더라도 그 막강한 실험성을 따질 수 있겠고, 사운드의 내적인 모습을 본다 해도 에릭 클랩튼이 활동하던 때부터 많은 음악적 실험 속에 사이키델릭까지도 이미 시도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마지막으로 기억되는 이들의 공연이 미국에서 펼쳐지지만, 타지에서 커다란 꿈을 가지고 활동하던 그룹은 이렇다 할 발전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며 결국 지미 페이지 외 멤버 모두가 탈퇴하면서 야드버즈는 끝을 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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