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룹 야드버즈에 에릭 클랩튼의 후임으로 가입하게 되는 제프 벡은 이미 더 나이프 시프트(THE KNIFE SHIFT)라는 그룹 등에서 화려한 음의 분출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제프의 다른 영역으로서의 진보적 패턴으로 야드버즈 내에는 또 다른 음의 합심을 이루게 됩니다. 야드버즈에 가입된 그 시점을 전후해서 제프는 이미 많은 실험적 음의 시도를 해왔으며, 이러한 시도의 결과는 50년대 말에 보 디들리(Bo Didely)가 선보인 바 있는 피드백(Feedback)의 가능성을 그만의 조직적이고 획기적인 음의 완성으로 보여줍니다. 그가 보인 피드백은 엄밀히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 이전에 이미 완성된 하나의 기법으로 인정을 받게 되죠. 제프가 야드버즈 가입 초기에 행한 여러 녹음 과정에서 선보인 팬더 텔레케스터(Fender Telecaster) 특유의 휠링은 이러한 시도와 맞물려 당시의 모든 마니아들의 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렸죠.
야드버즈의 멤버들은 제프의 실험성을 함유한 채 3집 앨범인「Having A Rave Up」을 1965년 12월 발표하게 됩니다. 이 앨범은 탈퇴한 에릭의 곡과 제프의 곡이 양분되어 제작된 앨범으로 전작에 이어 몇 곡의 트랙을 제공한 그레이엄의 <Heartfull Of Soul>과 명곡으로 통하는 <Still I'm Sad>등이 빅히트를 하게 되죠. 특히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곡이자, 이후 에어로스미스(AEROSMITH)도 리메이크를 하게 되는 <Train Kept A Rolling>이 눈에 띄는 트랙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66년은 야드버즈와 레드 제플린의 오묘함이 함께 하는 한 해였습니다. 야드버즈는 그룹 최초로 미국 시장 진출에도 성공하게 되고, 1966년 초겨울에는 너무도 의외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산레모 가요제”까지 출전하는 등 여러 각도에서 음악 외적인 시도까지 진행하였습니다. 이어서 1966년 5월 소니 보이 윌리엄슨(Sonny Boy Williamson)과의 협연을 담은 앨범인「Sonny Boy Williamson & The Yardbirds」를 공개한하게 되죠. 그리고 제프 벡의 기타 연주가 빛을 더한 「Over Under Side-ways Down」앨범이 동년 발표되는데, 여기에는 <Jeff's Boogie>와 <Lost Woman>등의 명곡이 덧씌워져 야드버즈 최고의 앨범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제프의 전위적인 음악적 시도에 멤버들의 피로가 노출되는데, 이러한 멤버들의 불만은 야드버즈를 탈퇴하여 또 다른 그룹으로 이적하거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그룹 결성이라는 다소 격앙된 결과로까지 이어지죠. 결국 키스 렐프의 르네상스(RENAISSANCE) - 또한 야드버즈의 또 다른 멤버인 짐 매카티(Jim MaCarty) 역시 이 곳에 합류 - 라는 그룹의 결성이 불씨가 되어 멤버 모두의 혼란은 가중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베이시스트인 폴 새뮤웰 스미스(Paul Sammuwell Smith)의 탈퇴가 이어지게 되고, 다급한 제프는 폴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지미 페이지를 기용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제프의 이후는 지미와의 얼마간의 동거 이후, 66년 11월을 기점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미에게 넘겨주고서 그룹을 등지게 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