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성성(聖聲)의 메아리 - 3회 ○ Hard Rock/Heavy Metal

성성(聖聲)의 메아리 - 3


성공 뒤 따라오는 것은 명망만은 아니다
. 책임있는 과정과 보다 나은 비전, 그리고 리더로서의 포용력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을 향한 진의 없는 마녀 사냥식 터부는 상식 밖의 오류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성공적인 안착을 이뤘던 스래쉬 메틀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미디어를 등에 업은 특정 종단과 무리들의 난도질에 스스로 퇴색되어져 갔다. 점차 음악의 본질 앞에서 스래쉬 메틀은 격조없는 저급 문화로 치부되고 말았으며, 급기야 그들 스스로 몰락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사회적 기류에 의한 스래쉬 메틀의 성장

모스크바, LA, 서울. 1980년대 올림픽을 유치했던 도시들이다. 동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두 나라와 그 두 개의 이념이 하나의 땅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한반도. 전 세계적으로 이념과 경제의 접합에 의해 많은 변혁이 이루어졌던 때가 1980년대이다. 이 시기는 자유 경제 시장이 안착했으며, 아시아 경제의 발달을 통해 다국적 기업의 성장이 눈에 띄게 활발했던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 흐름을 이어 1980년대 초반 미국의 낭만적 정서와 젊은 세대들의 쾌락적 사회상은 LA 메틀의 등장을 유도했으며, 정통 하드 락과 헤비 메틀에 열광하던 이들의 바램과 뮤지션 스스로의 발로에 의해 스래쉬 메틀이 등장할 수 있었다.

비주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 의해 탄생한 스래시 메틀은 모터헤드(Motorhead)와 베놈(Venom)의 정공법을 넘어서려 무던히 노력했다. 초기 스래쉬 메틀은 소수의 열성 팬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의 관심 밖의 장르였지만, 메탈리카(Metallica)와 슬레이어(Slayer), 메가데스(Megadeth) 등 실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그룹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안정된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또한 스래쉬 메틀은 자생적으로 유럽에서 기지개를 켰던 바로크 메틀의 흐름에 자극을 받아 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 권역으로 전달되어, 정톻 헤비 메틀의 성전이라 할 만한 독일에서 소돔(Sodom)과 크리에이터(Kreator), 디스트럭션(Destruction) 등의 걸출한 그룹의 등장까지 일궈냈다. 겹겹이 감겨오는 스래쉬 메틀의 리프와 변칙적 리듬, 비트를 쪼개고 쪼개어 나열하는 극강의 패턴은 락 음악 역사상 최고의 장르로 등극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1990년대 초반을 넘어서며 샤우팅에 의한 보컬은 더욱 강인한 그로울링으로 이어졌으며, 쉼 없이 트래킹하며 전진하는 기타는 완벽히 계산된 프레이즈 전개와 애드립으로 촘촘히 음의 배열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트랙을 돌고 돌 듯 끊임없이 내달리는 드럼과 베이스의 살벌한 스피드는 총성 가득한 전투를 떠올리게 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경쟁하듯 초심에 충실히 뻗어 나가던 스래쉬 메틀 그룹들은 점차 속도와 박자의 급박함에서 벗어나, 더욱 극한의 사운드 메이킹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국 음악의 소재에까지 작용을 하게 되었고. 폭력과 일탈, 그리고 살인과 파괴 등의 보다 강렬한 내용까지 담아냈다. 이는 순차적으로 전체적인 사운드에까지 영향을 끼쳐, 블랙, , 데스 메틀 등으로 유파되어 더욱 확장된 마계의 탄생을 유도하게 되었다.

 

21세기 헤비 사운드 사관학교, 스래쉬 메틀

장르적으로 스래쉬 메틀의 가장 큰 장점은 스피드와 멜로디, 그리고 테크닉에 있다. 이를 통해 스래쉬 메틀은 여러 개의 새로운 유파 장르를 파생시켰다. 바로크와 스래쉬의 결합으로 탄생된 스피드 메틀, 멜로디와 속도감이 배가된 멜로딕 스피드 메틀, 정통 메틀과 스래쉬의 혼합이 이뤄낸 파워 메틀, 삶과 죽음의 소재를 스래쉬보다 더 극단적 사운드로 완성해 낸 데스 메틀, 데스 메틀에서 세분화되어 변이된 고딕, 둠 메틀과 블랙 메틀, 그리고 스래쉬와 일렉트로닉이 결합된 인더스트리얼 등이 바로 그 음악들이다. 한 때 스래쉬 메틀은 뉴 에이지와 함께 기독교, 국내에서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스래쉬 메틀을 위장한 여러 유파 그룹들이 사타니즘과 새디즘에 의한 가사를 담고, 여러 비주얼을 연출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나 특정 장르라 해서, 해당 장르의 모든 이들이 반종교적, 반사회적 정서를 품고 나열했던 것은 아니었다. 니체의 작품 안티크리스트가 전체 기독교와 신에 대해 특정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 아닌, 집필 당시의 왜곡된 기독교에 대한 표현을 가한 것과 다름 아닐까.

1990년 중반, 외부적 요소에 의해 스래쉬 메틀은 유파 장르를 남긴 채, 서서히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반감 가득했던 사회적 기운과 얼터너티브 락의 등장에 의해 스래쉬는 봉인되듯 일순간에 음악 필드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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