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성성(聖聲)의 메아리 - 20회_Crash ○ KPOP & KROCK

성성(聖聲)의 메아리 - 20회

숨겨진 한국 스래쉬메틀과 계보를 찾아서_크래쉬 1회

성성(聖聲)의 메아리는 이번 호부터 한국 음악계에서 스래쉬메틀을 대표하는 뮤지션과 조직, 더 나아가 그 계보에 대한 소개의 순서를 갖는다. 지난 호 나티(Naty) 2회를 이어 이번 호부터 크래쉬(Crash)를 소개한다.


Crash 음악의 의의

크래쉬(Crash)는 클럽 락월드와 송설 라이브 등을 통해 헤비메틀 그룹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잠룡으로 손꼽히던 밴드였다. 이들은 헤비메틀 1세대 이후 2세대들이 주춤하던 때인 1994년 한국 헤비메틀 역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 앨범 [Endless Supply Of Pain]을 발표하며 1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크래쉬는 1세대 헤비메틀 그룹들이 가능성을 보이며 성장했던 것과 달리, 세계 시장에 가장 근접한 비즈니스 툴을 적용했다. 또한 음악과 연주력 면에서도 ‘해외 대형 그룹들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실제적으로 표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1991년 안흥찬(보컬. 베이스)과 윤두병(기타), 이영호(기타), 백창학(드럼)으로 시작된 크래쉬는 스래쉬메틀의 전형과 한국형 시스템을 조합한 헤비 사운드로 앨범 발매 이전부터 이미 많은 팬을 거느렸던 그룹이다. 이들은 같은 시기 유머러스한 소재를 바탕으로 대중들과 소통했던 멍키 헤드(Monkey Head)와 달리 순수하게 음악을 통해서 대중들과 교감을 이룬 그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예가 환경보호 슈퍼콘서트인 ‘내일은 늦으리’의 공연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피쳐링 참여, 그리고 이현도의 ‘이면(異面)’ 피쳐링 참여 등이다. 크래쉬의 또 다른 장점은 그 어느 그룹보다 ‘자세’가 나온다는 점이다. 멤버 전원이 연주를 하며 쏟아내는 ‘풍차 헤드뱅잉’과 육중하고 꽉 찬 느낌이 강한 무대 위 한가득 사위는 관객을 압도하는 강렬한 매력이 있다. 음악적으로 크래쉬는 카르카스(Carcass)와 브루탈 트루쓰(Brutal Truth), 카니발 콥스(Carnibal Corps) 등 세계적인 그룹의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던 콜린 리처드슨(Colin Richardson)이 참여한 1집 앨범 [Endless Supply Of Pain]의 성공을 통해 한국 헤비메틀의 새로운 계보를 형성했다. 1집의 대성공 이후 크래쉬는 변화된 헤비메틀의 결집을 보인 2집 [To Be Or Not To be]가 준히트를 기록하면서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지금에 활성화된 클럽과 라이브, 그리고 페스티벌의 대중화에 적잖은 기여를 끼치기도 했다. 작사적인 측면에서 크래쉬는 가장 한국적인 그룹이다. 김추자의 새 앨범 [It's Not Too Late]에서 가장 큰 전율스러움은 일반적인 가수들이 노래하면 감흥이 극도로 떨어질 가사의 노래를 놀랍고도 다채로운 창법을 통해 멋과 맛을 가미해서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대동소이한 매력을 지닌 크래쉬 역시 헤비메틀의 빠른 비트와 테크닉 속에서 우리말로 된 노래의 멋과 맛을 잘 살려 나오고 있다.


음반 산업의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했던 Crash

1990년대 초반 신승훈과 김건모, 조관우 등이 앨범 한 장으로 백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다. 크래쉬의 데뷔 음반이 발매되던 1994년 전후에 대기업들은 음반 시장 진출을 대대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적인 대기업의 음반 레이블은 삼성뮤직의 나이세스(Nices), 대우그룹의 세음미디어, 제일제당의 녹스(Nox), 현대그룹의 현대음향 등이었다. 음반 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선경SKC 역시 본격적인 음반 레이블 사업을 전개하게 된다. 가요와 팝, 클래식, 재즈, 국악에 국한된 장르만 기획했던 삼성의 나이세스 등과 달리 SKC는 가요 전문 레이블인 ‘메아리’와 클래식 전문 레이블인 ‘뮤제트’, 그리고 유일하게 헤비메틀 전문 레이블인 메틀 포스(Metal Force)를 동시에 런칭시켰다. SKC는 네이팜 데쓰(Napalm Death)와 캐쓰드럴(Cathdreal) 등과 같이 당시까지 라이센스로 접하기 힘들었던 음반을 발매했고, 전속 그룹으로 크래쉬와 정식 계약을 이루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곧장 진행했다. 또한 투자적인 측면에서 명프로듀서 콜린 리처드슨을 초대해서 크래쉬의 데뷔 앨범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조시켰다. 무서울 것 없었던 20대 초반의 크래쉬는 함께 동고동락하던 기타리스트 이영호의 군입대로 인해 3인조 체제로 당당하게 콜린 리처드슨과의 작업을 진행했다. “콜린 리처드슨과의 공동 작업은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당돌했던 기억들이 꽤 된다. 그럼에도 그는 늘 ‘브라보’를 외치며 우리를 독려했으며, 지금에 와서 그 때 그 경험은 매우 소중하게 남아있다.”고 기타리스트 윤두병은 당시를 회상한다. 이렇게 1994년 한국 헤비메틀 역사상 가장 완성도 높은 질감과 매력을 지닌 크래쉬의 데뷔 앨범은 제작이 완료되었다.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된 [Endless Supply Of Pain]

묵직하게 끓어 올리는 안흥찬의 보컬은 그로울링과 클린 보컬이 모두 우수한 편이다. ‘교실 이데아’를 통해 ‘우리나라 사람도 저런 목소리가 가능하구나’라는 반응까지 얻어냈던 안흥찬의 포효는 실로 대단하게 담겨있다. 신인의 연주 실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안정되고 테크닉이 뛰어나게 담겨진 윤두병의 기타는 이 앨범에서 거둬들인 가장 큰 산물이었다. 이제는 국내에서 가장 공격적인 기타리스트로 정평을 얻어내며 절제된 가운데 막강한 파워를 가미한 윤두병의 연주는 이때부터 이미 정상급이었다. 18살의 나이에 참여한 드러머 정용욱은 나티(Naty)의 김태수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테크니컬하고 빠른 연주를 펼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스래쉬메틀 고유의 빠른 업다운 피킹과 리듬, 그리고 속도감이 제대로 실려있는 크래쉬의 데뷔 앨범은 전체적인 사운드의 밸런스와 톤의 질감이 매우 뛰어나게 완성되었다.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던 ‘My Worst Enemy’는 완급 조절이 뛰어난 곡으로 크래쉬를 대표하는 넘버로 남아있다. 윤두병의 라이트핸드 주법 솔로가 인상적인 ‘Penalty’,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에서 하이라이트로 기억되고 있는 ‘Smoke On The Water’는 원곡에 없는 기타 솔로를 삽입했는데, 후반부 파트는 블랙 신드롬(Black Syndrome)의 김재만이 연주해서 이채를 더했다. [93 내일은 늦으리]에 수록되었던 ‘최후의 날에’는 곡의 구조가 보다 더 힘있게 재구성되어 수록되어 있다. (다음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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